다시 한 번 맞붙는 HGC의 두 영웅들

타다닥 타닥... 치열하게 울리던 키보드 소리가 전투가 마무리되면서 점차 잦아들자 연습실에는 일시적인 정적이 내려앉았습니다. 모든 적은 전장의 안개 속으로 물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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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 이재원 선수가 정적을 깼습니다. "상대는 아직 여기 어딘가 있어요." 주위를 탐색하며 말합니다. "갈까요?"

나머지 MVP Black 팀원들은 말없이 흩어지고, Rich 선수의 입가에는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Rich 선수는 적을 놀라게 하는 작전을 좋아하거든요. 팀원들이 기습 진형으로 자리 잡자, Rich 선수는 "고, 고, 고!"를 목청껏 외치며 뛰어나갔습니다.

I역시 적들이 있었고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Rich 선수가 원하던 대로였습니다. Rich 선수는 번개처럼 전장을 가로지르며 초인적인 감각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적의 기술을 흘려보냈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자기장을 두르고 있는 것 같았죠.

Rich 선수의 모니터 뒤에 서 있던 ‘Noblesse’ 채도준 코치는 전장을 붉게 물들이는 Rich 선수의 춤사위를 지켜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전투가 끝나자 Nobless 코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거장 Rich의 춤사위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볼 때마다 당혹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MVP Black의 승리가 보나 마나 뻔했습니다. MVP Black은 적 본진으로 돌진해 승리를 확정 지었습니다. Rich 선수는 크리스마스를 맞은 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짓고 자리에서 방방 뛰며 외쳤습니다.

좋았어!"

프로의 탄생

아마 전에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은 Rich 선수의 아버지가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컴퓨터에 스타크래프트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대부분 한국 게이머가 비슷했겠지만, Rich 선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프로 게이머가 되겠다는 자식을 응원해 주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제가 아직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어머니는 꿈이 있었어요. 제가 스타가 되는 꿈이었죠. 꼭 게이머가 아니라도 상관없었어요. 무대에서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죠. 그래서 제가 가능성을 보이자 어머니가 제게 프로가 되라고 권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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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 선수가 대회에 나선 것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한때, 다른 한국 MOBA 게임 래더 8위를 차지했었고 프로팀으로부터 입단 테스트 게의를 받았습니다. 실력은 충분했지만, 그 게임은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얼마 후, Rich 선수는 자신이 뭔가 새로운 것, 뭔가 다른 것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테크니컬 알파가 발표되자 바로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게임이 자신이 원하던 게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에서 혼자 승리할 수는 없다고요. 일반 플레이어에게는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Rich 선수처럼 타고난 천재와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Rich 선수의 플레이와 기술 운용은 너무나 빼어났습니다. 심지어 다른 최고급 프로 선수와 비교해도 두드러질 정도였습니다. 한국 최초의 대규모 히어로즈 대회인 아프리카VT 히어로즈 빅리그에서 Rich 선수 소속 팀이 우승했을 때, 아무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저 시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프로 무대가 열리면서 Rich 선수의 경력도 시작되었습니다. 2015년, Team Asia StarDust에 합류하면서 4개 대회 결승에 진출하고 두 번을 우승했습니다. 2016년에는 MVP Black으로 이적하면서 이후 6개월 동안 참가한 대회에서 모조리 우승했습니다. 전 세계 스타 선수가 모두 Rich 선수를 최고로 꼽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Rich 선수가 소속된 팀이 패할 때조차도 Rich 선수의 명성은 전혀 빛이 바래지 않게 되었습니다.

Rich 선수는 점점 커지는 명성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았죠. 프로 선수로서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내부에서 의문이 일었습니다. 내가 게임을 제대로 선택한 것일까? 어쨌든, Rich 선수에게는 어떤 e스포츠에 진출하더라도 프로로서 성공할 만큼 출중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일례로, 오버워치 한국 래더에서 5위에 오른 경험도 있습니다.

지난해 말, Rich 선수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을 잠시 떠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고 싶어요. 제가 정말 플레이하고 싶은 게임을요."

구르는 돌

Rich 선수는 충만한 에너지로 끊임없이 튀어 오르는 공과 같습니다. 게임에서든 개인적으로든, 만족을 모릅니다. Rich 선수가 다음에 어디로 튀어 오를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와 이야기해보면, 언제든지 이야기에 흥미를 잃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무례하거나 지루해서가 아니라, 그게 바로 Rich 선수가 연결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Rich 선수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과 거리를 둔 이유입니다. 어딘가 더 좋은 게임이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죠.

답을 얻기까지 몇 달이 걸렸습니다. 다른 게임들을 플레이하며 여전히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만족스럽지 않았죠. 수입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죠. 그 게임들은 온종일 플레이해도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재미있었고 외로움도 달래주었습니다. 자신의 비 사교성과 싸운 셈이죠. Rich 선수가 방송하면서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짐작도 못 할 것입니다. 방송은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집에서 온종일 웹캠 앞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면, 정말 그 모습을 보셔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잊고 기쁨과 열정으로 충만하여 멋진 플레이가 성공할 때마다 하늘이 떠나가라 웃는 모습을요.

그럼, Rich 선수가 찾아낸, 온종일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은 무엇이었을까요?

한 번만 더 여쭤볼게요

아직도 자신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많은 분이 저를 그렇게 봐주시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죠."

네, 하지만 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는데요. 아직도 자신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아서스나 데하카 같은 일부 비돌격 탱커 플레이는 유럽 선수들이 더 잘 하는 것 같아요."

그러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아직도 자신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세요?

"그게..." 솔직하게 대답해도 될지 확신이 없는지 Rich 선수는 말을 늘였습니다. 그러다가 순진함과 장난스러움이 섞인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더니 대답했습니다. "네,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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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 선수의 망설임이 말해줍니다. Rich 선수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고 확실한 업적을 들어보면 Rich 선수가 세계 최고라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일 년 반 동안 우승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세계 최고 선수가 그렇게 오래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고요?

그게 바로 Rich 선수가 대답해야 할 다음 질문입니다. 오해하지는 마세요. Rich 선수가 아이 같은 순수한 애정으로 히어로즈 무대에 복귀했을지 모르지만, 마음이 내킬 때마다 가즈로와 머키를 플레이하려고 돌아왔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자부심을 되찾겠다는 갈망이 활활 타오르는 지금, Rich 선수의 우승을 향한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많은 분이 제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세계 최고, 최대의 무대에서 우승을 거두지 않고는 그런 찬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바로 블리즈컨이죠. 아직 제가 정복하지 못한 정상이죠."

작년 블리즈컨 준결승에서 MVP Black은 유럽의 강자 Fnatic에게 3대 1로 무릎을 꿇으며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역사상 최대의 반전이었습니다.

"당시 저희는 외국 팀에게 패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완전히 착각이었죠.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였어요.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패배였죠."라고 Rich 선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답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유럽은 HGC에서 가장 강력한 지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Fnatic은 세계 챔피언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MVP Black이 도전자로서 실력을 증명해야 합니다.

대진표도 운명적입니다. 순조롭게 진행되면, 두 팀은 최종 결승에서 만나게 됩니다. 만만치 않은 팀들을 꺾어야겠지만, 두 팀의 결승전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바로 Rich 선수가 원하는 대로 말이죠.

"이번에는 결승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복수전을 하고 싶거든요."

모든 이야기에는 양면이 있다

한국 팀들이 영원히 승리 행진을 이어갈 것 같을 때, 대회에서 좌절했던 경험은 없나요?

"'좌절'이라니, 무슨 뜻이죠?"

아마 스웨덴어로 잘 통역되지 않은 듯합니다.

좌절[명사]: 마음이나 기운이 꺾임

정의를 들은 Fnatic 팀의 주장 Dob ‘Quackniix’ Engström 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사실, '좌절'이라기 보다는 동력이었죠. 싸워서 꺾을 상대가 있다는 얘기잖아요. 절대 완벽해질 수는 없지만, 추구할 목표가 있으면 발전과 성장의 동력이 되어주니까요."

"막대기에 달린 당근과 같아요. 뭔가 쫓아갈 것이 있는 거죠. 정상에 머무는 건 훨씬 힘들어요. 일단 정상에 오르면 더 발전하기 힘들거든요.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하고 끊임없이 혁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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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하게 말해서, 세계 정상의 선수들이 격돌했던 지난 미드 시즌 난투에서 우승함으로써 Fnatic은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Quackniix 선수는 다르게 말할 것입니다. 앙코르가 필요하다고 말이죠. 서구권 최강팀에 거는 엄청난 기대의 무게가 Quackniix 선수의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었습니다.

"지난해, 저희가 추계 챔피언십 준결승에서 MVP Black을 꺾은 것은 저희에게 있어 최고의 업적이었습니다. 당시, MVP Black은 최강이었거든요. 저희는 딱히 우승이 목표도 아니었어요. 거기까지 간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있었죠. 그래서 아무런 부담 없이 경기에 임했습니다. 승리하고 관중석을 보니 모두 일어서서 열광적으로 저희 팀 이름을 외치고 있었어요. 정말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죠."라며 Quackniix 선수는 말을 이었습니다.

"다시 한바퀴 돌아 블리즈컨 2017에 왔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저는 MVP Black이 최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사전 HGC 파이널 부트 캠프에서 Fnatic이 거둔 결과는 유럽의 방식이 더는 세계를 주도하지 못한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Quackniix 선수는 말합니다. "완전히 깨졌어요. 저희는 저희 방식대로 저쪽은 저쪽 방식대로 플레이했고, 저희가 졌죠."

압박의 용량

"세계 최고의 팀" 멋진 타이틀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머나먼 타국에서 엄청난 시차에 시달리며 기존의 전략을 완전히 바꿔 승부해야 한다면 더욱 어렵겠지요.

한국의 부트 캠프에서 겪은 참패 후, Fnatic은 백지상태로 돌아가 게임에 대한 접근법부터 다시 검토해야 했습니다. Fnatic의 느리고 착실하게 승기를 잡아가는 방식은 한국의 빠르고 공격적인 전술에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패배에 대한 Fnatic의 대응은 다른 팀과는 달랐습니다. Fnatic은 자신감을 잃지도 열정이 서서히 식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좌절', 스웨덴 말로는 'avskräckt'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입니다.

대신, Fnatic은 적을 알기 위해 적의 무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한국 팀의 전략을 엄청나게 연습했어요. 왜 이런 전략을 하는지, 왜 이런 전략이 통하는지, 전략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요. 저희는 저희만의 방식이 있었고 저희만의 이해가 있었어요. 그걸 한국에서 배운 것과 결합하려고 시도했죠."라고 Quackniix 선수는 말했습니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 블리즈컨 HGC 파이널의 성적으로 입증했으며, 두 세계에서 최고이자 히어로즈 e스포츠 무대에서 가장 날카로운 전략 구상 능력을 지닌 이들 중 하나가 사용했습니다. 오프닝 주에서 드러난 모든 지표가 Rich 선수와 그가 소속된 MVP Black의 우승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만, Quackniix와 그의 팀은 강력한 전략을 준비했으며 여전히 우승을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희는 적어도 저희가 원하는 게임 플레이가 무엇인지 잘 이해합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을 얻는 한, 저희는 멈추지 않습니다."